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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공간의 자연화 관찰기 – 폐공장, 공터의 생태계 회복 기록

by 살앙이얌 2025. 5. 21.

우리는 종종 ‘자연은 멀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폐공장, 공터와 같은 버려진 공간의 자연화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버려진 공간의 자연화 관찰기 - 폐공장, 공터의 생태계 회복 기록
버려진 공간의 자연화 관찰기 - 폐공장, 공터의 생태계 회복 기록


그린벨트 너머, 국립공원이나 계곡, 깊은 산 속에나 가야 자연이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우리가 버린 자리, 무너진 벽 틈, 사용하지 않는 공간 어딘가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연은 다시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내가 몇 달간 관찰한 버려진 공간 속 자연의 귀환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때 산업과 인간 활동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어떻게 생명으로 채워지는지를,
그 변화의 디테일을 담아보려 합니다.

폐공장의 틈에서 자라난 풀잎 하나 – 철과 콘크리트 사이의 생명력

처음 내가 관찰을 시작한 곳은 오래전 문을 닫은 폐공장이었습니다.
녹슨 철문과 깨진 유리창, 붉게 바랜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얇게 낀 흙 위로는 강아지풀, 질경이, 쇠뜨기 같은 들풀이 줄지어 피어나 있었고,
갈라진 시멘트 틈 사이로는 민들레와 큰조롱이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쪽 벽에는 담쟁이덩굴이 거미줄처럼 뻗어 올라
한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구조물을 다시 ‘녹색화’ 하고 있었죠.

놀라웠던 건 이 공간엔 그 누구도 생태복원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아무도 돌보지 않았지만 자연은 스스로 돌아왔습니다.

이 현상은 생태학적으로 “자연천이(natural succession)” 라고 불립니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가장 적응력이 강한 생물부터 서서히 자리를 잡고,
그 뒤를 이어 다양한 종들이 조심스레 들어오며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안에는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고, 생명 간의 보이지 않는 협력이 있습니다.
폐공장은 더 이상 죽은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터의 작은 숲 – 도심 속 야생의 재림

내가 관찰한 또 하나의 장소는 아파트 단지 옆에 있던 잡초만 무성한 공터였습니다.
오래전 부동산 개발이 중단되어 몇 년째 방치된 그곳은,
처음엔 그저 ‘버려진 땅’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지나며 그 공간은 점점 ‘작은 숲’으로 변해갔습니다.

봄이 되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작은 곤충들이었습니다.
노란 꽃을 피운 애기똥풀 주위로 꿀벌이 날아들고,
긴 다리를 가진 거미들이 땅 위에 그물망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엔 나비, 사마귀, 쇠똥구리가 등장했고,
어느새 작은 새들까지 그곳을 ‘쉼터’로 삼고 있었습니다.

잡초만 있던 땅은 몇 달 사이 야생성과 질서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자연이 가진 회복력과 적응력 덕분입니다.
인간이 잠시 손을 뗀 그 시간 동안,
식물은 흙을 덮고, 뿌리를 내리며 토양을 안정시키고,
그 위로 다양한 생물들이 연쇄적으로 들어와 균형을 이루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곳을 지날 때면 마치 도심 속 ‘야생의 조각’을 발견한 느낌이 듭니다.
높은 빌딩과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채,
이 작은 공터만은 다르게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 자체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의 흔적을 덮어가는 시간 – 생태계의 조용한 승리

버려진 공간을 관찰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자연은 인간의 흔적을 “덮는 방식”으로 복원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너진 벽 위로 담쟁이가 자라고,
녹슨 철골 구조 사이로 나무가 싹을 틔우며,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뿌리 내릴 흙을 찾아내는 생명들.

이는 단순한 식물의 자람이 아니라,
생태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원”을 시작하는 신호입니다.
특히 몇 년 단위로 관찰해보면,
자연은 매우 정교하게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갑니다.
초기에는 잡초가 자리 잡고,
그 뒤로는 키 작은 덤불 식물이,
나중에는 자작나무, 느릅나무 같은 교목종이 등장해
결국엔 작은 숲을 이뤄냅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2차 천이(secondary succession)” 라고 부르며,
인간 활동 이후 생태계가 회복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합니다.

나는 이 과정을 보며 느꼈습니다.
자연은 결코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가 그 공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자연에겐 가장 큰 배려가 된다는 사실도요.

 

마무리하며 – 우리는 떠났고, 자연은 돌아왔다

버려진 공간은 죽은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오히려 자연이 돌아올 준비를 시작한 장소입니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 다시 숨 쉬는 땅이 생기고,
그 위로 생명들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듭니다.

이 변화는 아주 느리지만,
그 느림 속엔 진짜 복원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공간을 ‘쓸모없다’고 치부할 때,
자연은 그곳에서 스스로 쓸모를 만들어갑니다.

그곳엔 아무도 없지만, 사실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흙, 씨앗, 바람, 햇빛,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생명.
그 조합이 얼마나 놀라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지를
나는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공간들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우리의 눈엔 버려진 것 같지만,
사실은 자연의 복귀가 시작된 장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