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식물의 시간으로 살기 – 한 달간 식물처럼 느리게 살아본 기록

by 살앙이얌 2025. 5. 16.

현대인은 너무 빨리 삽니다. 오늘은 식물의 시간으로 살기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식물의 시간으로 살기 - 한 달간 식물처럼 느리게 살아본 기록
식물의 시간으로 살기 - 한 달간 식물처럼 느리게 살아본 기록

 

늘 시계를 보고, 다음 약속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은 ‘다음’을 위해 존재하는 듯 움직입니다.
그런 나에게 문득 ‘식물처럼 살아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햇빛이 들면 눈을 뜨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며, 조용히 자신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는 식물.
그 느림과 단순함을 내 일상에 적용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 질문을 품고 나는 한 달간 ‘식물의 시간’에 나를 맞춰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실험의 기록을 여기 남깁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쉰다 – 리듬을 자연에 맡기다

첫 번째로 바꾼 건 기상과 취침 시간이었습니다.
알람 없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활동을 마치는 방식으로 일상을 구성했습니다.
식물은 인공 조명 아래에서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태양의 흐름에 따라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처음엔 무척 낯설었습니다.
해가 뜨는 시간은 들쭉날쭉하고, 해가 지는 시간은 너무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겨울의 저녁 6시는 너무 일찍 깜깜해졌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저녁 활동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짧아지니 그 안에서 꼭 필요한 일만 하게 되었고,
불필요한 웹서핑이나 스마트폰 스크롤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의외로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줄어든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하루가 짧으니 오히려 그 안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밝을 때는 활동하고, 어두우면 쉰다’는 단순한 리듬이 몸에 익자,
나의 하루는 좀 더 정돈되고 고요해졌습니다.

목이 마르면 마시고, 배가 고프면 먹는다 – 감각의 리듬에 귀 기울이기

다음으로 시도한 건 자연스러운 감각에 귀 기울이기였습니다.
식물은 필요할 때 물을 흡수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늦게 쉬며, 너무 무리하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 달간 ‘배가 고플 때만 먹기’, ‘졸릴 때는 눈 감기’, ‘갈증이 느껴질 때만 물 마시기’라는 단순한 원칙을 정했습니다.

이 실험은 처음엔 나를 많이 당황시켰습니다.
시간에 따라 식사를 하던 나의 생활 습관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내가 평소 필요 이상으로 먹고 마시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일 때 간식을 찾던 행동은 단지 감정적 습관이었을 뿐, 실제로는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식물은 필요한 것만 받아들입니다.
이 원칙을 일상에 적용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과도한 자극이나 불필요한 정보, 과식과 과한 일정이 빠져나간 자리에 여백이 생겼습니다.
그 여백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충분함’이라는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법 – 정적인 존재로 살아보기

식물은 하루의 대부분을 ‘가만히’ 보내는 존재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생산적이지 않으며, 조용히 존재 그 자체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실험 마지막 2주는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10분, 20분, 30분… 아무런 자극 없이 그냥 있는 시간. 앉아서 창밖을 보거나, 화분을 바라보는 시간.

이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이 시간이 아깝다’, ‘차라리 무언가 배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며, 나 자신을 자꾸 채근하게 되었죠.
그러나 2주차가 지나자 이런 시간들이 점점 마음을 정돈시켜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마음의 흙 속에 가라앉은 침전물들이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불안, 초조, 비교, 효율이라는 말에 얽매여 있던 나에게 그 정적의 시간은 휴식이자 회복이었습니다.

결국 식물처럼 살아본다는 건 존재의 속도로 살아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그냥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내면의 수용이 찾아왔습니다.

 

마무리하며 – 속도는 곧 시선의 깊이다
한 달의 실험을 마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빠르게 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해가 지면 불을 끄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고, 식물처럼 조용히 숨을 쉬어봅니다.

식물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고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깊이와 밀도가 있었습니다.
급하게 흘러가는 것들은 보지 못하는 작은 디테일을,
느리게 사는 식물은 천천히, 그러나 정확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삶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질 때, 방향을 잃었을 때,
우리는 다시 초록빛 존재들처럼 살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존재 그 자체가 충분한 시간.
그것이 바로 식물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