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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자연의 흔적 – 회색 도시에서 발견한 초록빛 기록

by 살앙이얌 2025. 5. 15.

도시는 차갑고 빠릅니다. 오늘은 도심 속 자연의 흔적인 회색도시에서 발견한 초록빛 기록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도심 속 자연의 흔적 - 회색 도시에서 발견한 초록빛 기록
도심 속 자연의 흔적 - 회색 도시에서 발견한 초록빛 기록

 

사람들은 늘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건물들은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자랍니다. 그러나 그런 도시에도 자연은 스며듭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분명히. 나는 그 미세한 생명들의 흔적을 찾아, 서울의 회색 틈 사이를 걸었습니다. 그 속에서 발견한 초록빛의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공유합니다. 

인도 틈 사이, 이름 없는 풀꽃들

출근길, 매일 걷는 인도의 가장자리. 보통은 사람들의 발에 닿지 않기 위해 한 칸쯤 비켜 걷는 그 공간에, 작은 풀꽃들이 피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 관리되지도 않는 그곳에는 민들레, 강아지풀, 돼지풀 같은 이름을 가진 식물들이 고요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면 흙탕물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길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잡초'로만 보았던 그 생명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각각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풀은 작은 꽃을 피우고 있었고, 어떤 풀은 그늘 아래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죠.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보며 적어보는 일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름을 알고 나니 그 존재가 더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말, 그 진심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담장 위, 끈질기게 타오르는 초록

오래된 빌라촌의 돌담, 주택가의 낮은 담벼락 위에는 어김없이 담쟁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누가 심은 것도 아니고, 가지런히 가꾼 것도 아니지만 담쟁이는 마치 일부러 이 도시를 꾸미려는 듯 담장을 타고 오릅니다.

비탈진 길을 오르다 우연히 마주한 붉게 물든 가을 담쟁이는, 마치 벽돌 위에 그려진 그림 같았습니다.
철근과 시멘트로 뒤덮인 벽을 온전히 덮어낸 이 식물은 그 존재만으로도 공간의 인상을 바꿔 놓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한 장소가 있습니다.
폐건물로 추정되는 낡은 상가 건물의 담장 전체를 덮은 담쟁이덩굴.
창문은 깨져 있고 내부는 텅 비어 있었지만, 건물은 마치 자연과 동화된 유적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이 떠난 자리에 자연은 조용히 스며들어 그 공간을 다시 생명으로 감쌌습니다.

그날, 나는 담장을 마주한 채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결국 자연을 밀어낼 수 없다는 것, 아니, 자연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담쟁이를 통해 느꼈습니다.

폐건물, 생명이 다시 숨 쉬는 공간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종종 죽음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낡은 건물, 닫힌 창, 먼지 낀 유리창.
그러나 그런 공간에도 생명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들른 서울의 한 폐공장은 이제 사용되지 않는 철문과 깨진 유리 사이로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공장 마당의 시멘트 틈새마다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빗물받이 근처에는 작은 고사리류도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곳에 새들이 날아들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의 소음이 사라진 공간은 오히려 조용한 생명의 쉼터가 된 듯 보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멈춘 곳'에서부터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는 것을.

나는 이 공간을 '도시의 회복된 숨결'이라 불렀습니다.
기계와 노동의 공간이었던 공장이 이제는 풀과 벌레와 새의 공간이 되었으니까요.
그 변화는 조용했지만 강력했고, 슬펐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는 도시를 '자연과 멀어진 공간'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고개를 숙이고, 발밑을 바라보고, 벽을 올려다보면 그 안에 숨어 있는 자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록빛 생명들은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이 버린 공간에서, 버린 것들 사이에서 더 끈질기게 살아갑니다.

이 기록은 거창한 자연 예찬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도, 자연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도 그 초록빛 흔적을 마주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잠시 눈을 맞춰보길 바랍니다.

그 순간, 도시는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